용인 문정공 조광조 묘 및 신도비(경기도 기념물169호) 주차할 곳도 마땅치 않다. 43번 도로 상현교차로 서편에 있다. 수원에서 수지방향으로 가다보면 왼편에 있다. 근거리에 조광조를 모신 심곡서원(http://blog.daum.net/dbsqkqh/4866)이 있다. 심곡서원은 주차공간이 넓다. 조광조 신도비 조광조 묘 아래에 있는 소나무 조선 중기의 문신 정암(靜庵) 조.. *경기-인천/유형문화재,기념물 2011.06.14
용인 궤장및사궤장연회도첩(보물930호, 의자 및 지팡이) 조선시대에는 70세가 넘는 신하에게 공경의 뜻으로 나라에서 지팡이 <장 (杖)>와 의자 <궤 (几)>와 가마 등을 주는 풍습이 있었는데, 그에 따라 왕이 내린 물품이다. 현종 9년(1668) 11월 왕이 당시 원로대신이었던 이경석에게 공경의 뜻으로 내린 궤 1점과 장 4점 그리고 이를 .. *경기-인천/국보,보물 2011.06.13
용인 궤장및사궤장연회도첩(보물930호, 사궤장연회도첩) 조선시대에는 70세가 넘는 신하에게 공경의 뜻으로 나라에서 지팡이 <장 (杖)>와 의자 <궤 (几)>와 가마 등을 주는 풍습이 있었는데, 그에 따라 왕이 내린 물품이다. 현종 9년(1668) 11월 왕이 당시 원로대신이었던 이경석에게 공경의 뜻으로 내린 궤 1점과 장 4점 그리고 이를 .. *경기-인천/국보,보물 2011.06.13
용인 궤장및사궤장연회도첩(보물930호, 지팡이) 조선시대에는 70세가 넘는 신하에게 공경의 뜻으로 나라에서 지팡이 <장 (杖)>와 의자 <궤 (几)>와 가마 등을 주는 풍습이 있었는데, 그에 따라 왕이 내린 물품이다. 현종 9년(1668) 11월 왕이 당시 원로대신이었던 이경석에게 공경의 뜻으로 내린 궤 1점과 장 4점 그리고 이를 .. *경기-인천/국보,보물 2011.06.13
용인 이중로정사공신교서(보물1174-1호) 이 교서는 인조 3년(1625)에 이중로에게 추증한 것으로 그가 죽은 뒤에 내린 것이다. 이중로(1577∼1624)는 개국공신 이지란의 후손으로 이괄의 난 때 이성부와 함께 예성강 상류인 마탄에서 전사하였다. 16살 되던 해에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이듬해 선전관이 되었고, 광해군 13년(1621).. *경기-인천/국보,보물 2011.06.13
용인 이중로 영정(보물1174-2호) 이중로영정은 오사모에 단령을 입고 의자에 앉은 전신좌상이다. 흉배는 모란 및 해태문양이 수놓인 것을 착용하고 있으며, 학정금대(鶴頂金帶)를 두르고 있어 이 초상화가 무관 종2품 때의 도상임을 말해준다. 이 상의 특징을 들자면, 사모의 높이가 상당히 낮으며, 양쪽으로 뻗친.. *경기-인천/국보,보물 2011.06.13
용인 유수 초상(보물1176호) 조선 중기 문신인 유수(柳綏)의 초상화로 크기는 가로 88㎝, 세로 165.5㎝이다. 유수는 경종 1년(1721)에 문과에 급제하여 통정대부에 올랐다. 이 초상화는 의자에 앉아 오른쪽을 바라보는 전신상으로, 얼굴은 선으로 윤곽을 자연스럽게 묘사하여 온화한 성품을 표현하였다. 관리들이 .. *경기-인천/국보,보물 2011.06.13
용인 원균 선무공신교서(보물1133호) 이 교서는 선조 37년(1604) 임진왜란 때 경상우도수군절도사로서 왜군과 대적하여 크게 이기고, 정유재란 때 통제사가 되어 적선을 물리치다 장렬하게 전사한 원균(1540∼1597)에게 공신으로 임명한다는 내용을 담은 공신교서이다. 이것의 내용은 왜군을 물리치고 장렬하게 전사한 원.. *경기-인천/국보,보물 2011.06.13
용인 선조어서사송언신밀찰첩(보물941-1호) 조선시대 선조가 직접 써서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송언신(1542∼1612)에게 남모르게 보낸 서찰 7건이다. 송언신은 선조 10년(1577) 문과에 급제하고 여러 벼슬을 두루 거쳐 호조를 제외한 5조의 판서를 지냈다. 명종 때에는 불교를 배척하여 중 보우를 처형할 것을 건의하기도 했다. 서.. *경기-인천/국보,보물 2011.06.13
용인 선조어서사송언신밀찰첩(보물941-1호) 조선시대 선조가 직접 써서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송언신(1542∼1612)에게 남모르게 보낸 서찰 7건이다. 송언신은 선조 10년(1577) 문과에 급제하고 여러 벼슬을 두루 거쳐 호조를 제외한 5조의 판서를 지냈다. 명종 때에는 불교를 배척하여 중 보우를 처형할 것을 건의하기도 했다. 서.. *경기-인천/국보,보물 2011.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