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인천/유형문화재,기념물

남동 이여발 묘(인천광역시 기념물50호)

천지연미소바위 2012. 12. 20. 19:18

조선의 무관인 이여발(1621∼1683)의 묘이다. 이여발의 자는 군실(君實), 시호는 정익(貞翼)이며 본관은 한산(韓山)이다.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의배(義培)의 손자로서 조선 효종 2년(1651) 무과에 급제, 비변랑(備邊郞), 도총사를 거쳐 숙천(肅川)부사로 선정을 베풀어 거사비(去思碑)가 세워졌다. 충청병마절도사를 거쳐 특히 회령(會寧)부사에 보직되어 가선대부(嘉善大夫)의 위계에 오르고 한흥군(韓興君)에 봉해졌는데, 회령은 북방의 거진(巨鎭)으로서 야인(野人)들과 서로 무역하는 시장이 있어 야인상인들이 오는 정원도 없고 체류하는 기한도 없어서 우리의 피해가 많았다. 이때 이여발이 부임하여 상인의 출입인원을 320명 이내로, 체류일수를 20일 이내로 규정하여 피해를 줄였다. 현종 때 병·공조참판에 특진했으며 평안도병마절도사로 나가 성을 수축하고 군사들에게 사예(射藝)를 연습시키는 한편 병기를 준비하여 북방 수비에 만전을 기하였다. 어영대장, 한성부 좌·우윤을 역임하고 숙종 때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이르러 사망하였다. 분묘의 형태는 호석이 없는 봉분 앞에 비석과 상석이 배치되어 있으며, 좌우에 망주석이 세워져 있고 그 앞에 문인석 한 쌍이 세워진 평범한 묘제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분묘 앞 10여미터 아래로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이여발(1621∼1683)은 조선 숙종때 무관으로 효종2년(1651)무과에 급제하여 비변량, 숙천부사, 충청병마절도사를 거쳐 회령부사를 역임하고 한흥군에 봉해졌다. 현종때에는 병조 및 공조참판과 어영대장, 한성 좌·우윤을 역임하였으며 숙종때에는 지중추부사에 올랐다. 숙종9년(1683) 6월에 사망하여 인천시 서구 신현동 문중묘지에 안장되었다가 1703년 현 위치에 이장하고 묘비와 석물을 배치하고 신도비를 건립하였다.(출처 : 문화재청)

 

 

 

우측길로 간다. 소나무 숲이 있는 곳에 이여발 묘가 있다.

 

 

 

오른쪽 하단에 있는 길로 조금더 간 후 좌회전하면 주차장이 있다. 묘는 사진 중앙 방향에 있다.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23,00500000,23&queryText=((V_KDCD=23)) <and>(((V_NO >=50)<and>(V_NO <= 50)))&maxDocs=15000&docStart=1&docPage=10&canasse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