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인천/국보,보물

수원 팔달문(보물402호, 사적3호)

천지연미소바위 2013. 11. 29. 19:42

수원 남문으로 칭하는 팔달문. 지도에서32번 위치

 

 

 

 

 

 

 

 

 

 

 

 

 

 

 

 

 

 

 

복원된 남수문, 지도에서33번 위치

 

 

  화성은 정조대왕13년인 1789년 10월7일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묘를 지금의 화성시 태안읍 안녕리에 있는 화산으로 옮기고 그곳에 있던 관아와 민가를 지금의 수원 팔달산 동쪽기슭으로 옮겼다. 이후 1793년 수원도후부가 화성유수부로 승격되고 1794년 1월부터 1796년 9월까지 축조되었다. 규모는 둘레가 약5.7km로 근대적 신도시이며 실학의 총체적 결정체이다. 화성은 정약용의 기본설계서인 ‘성설’에 기초하고 조선·중국·일본 성곽의 장점만 골라 새로운 과학기기를 사용하여 사용한 점이 특징이다. 자랑할 것은 성곽 축성에 대한 모든내용을 ‘화성성역의궤’라는 공사보고서를 통해 자세히 기록을 남기었다. 수원성은 조선 정조 18년(1794)에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양주에서 수원으로 옮기면서 짓기 시작하여 정조 20년(1796)에 완성한 성곽이다. 중국성의 모습을 본뜨기는 했지만 과학적인 방법으로 성을 쌓아 훨씬 발달한 모습을 하며 한국 성곽을 대표하는 뛰어난 유적이다. 이 문은 수원성의 남쪽문으로 이름은 서쪽에 있는 팔달산에서 따 왔다. 문루는 앞면 5칸·옆면 2칸의 2층 건물이며, 지붕은 앞면에서 볼 때 사다리꼴을 한 우진각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윗부분에 짠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문의 바깥쪽에는 문을 보호하고 튼튼히 지키기 위해 반원 모양으로 옹성을 쌓았다. 이 옹성은 1975년 복원공사 때 고증하여 본래의 모습으로 복원한 것이다. 또한 문의 좌우로 성벽이 연결되어 있었지만 도로를 만들면서 헐어버려 지금은 성문만 남아 있다. 수원성 안쪽에 있는 여러 건물 중 가장 크고 화려하며, 발달된 조선 후기의 성문 건축형태를 고루 갖추고 있는 문화재이다.(출처 : 문화재청)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2,04020000,31&flag=Y&cultnm=수원 팔달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