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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서봉사지 현오국사탑비(보물9호)

천지연미소바위 2014. 11. 11. 09:24

 5년 전쯤 갔었는데(http://blog.daum.net/dbsqkqh/49) 다시 찾아가 보았다.

 

)

 

 

 

좌회전한다.

 

오른족으로 간다. 전에 갔을 때는 다리가 없었는데. 다리를 건너면 개인 소유지이다. 주차는 미리 한다. 주소는 대략 '수지구 신봉동 765-22번지'이다.

 

 

다리 건너기 직전에 왼쪽으로 안내 되어 있는데 다리를 건너 가도 다시 만난다.

 

 

 

 

 

오른쪽으로 간다.

 

 

용인 서봉사지 현오국사탑비 비각이 보인다.

 

 

 

 

 

 

위에는 서봉사 절터를 발굴 중이다.

 

 

 

 

 

 

 

이곳 저곳 절터의 흔적이 드러나 있다.

 

 

 

 

 

 

 

 

 

 

 

 

되돌아 나오면서 다시 담아 보았다.

 

서봉사의 창건에 대한 기록은 없고 절터의 크기로 보아 아주 큰 규모의 절로 추정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절에서 떠내려오는 쌀뜨물이 10리나 흘러내려와 왜적이 물을 따라 올라가서 절을 불태웠다고 한다. 이곳은 탑비의 비각을 세우는 공사를 하던 도중에 기록이 남아있는 기와조각이 발견되어 서봉사의 옛터임이 밝혀졌다. 명종 15(1185)에 세워진 이 탑비는 현오국사(玄悟國師)의 행적을 후대에 알리고자 만들어졌다. 보통 부도와 함께 건립되는데 절터에 부도의 흔적은 없고 이 비석만 남아 있다. 화강암의 비받침위에 점판암으로 만들어진 비몸돌이 놓여있는 단촐한 모습이다. 비받침부분의 윗면은 4변을 비스듬히 잘라내었고, 비문이 새겨지는 비몸에도 윗부분의 양 귀끝을 사선으로 접듯이 잘라서 마무리하였다. 비문에 의하면, 현오국사는 15세에 불일사(佛日寺)에서 승려가 된 후 부석사(浮石寺)의 주지를 거쳐 명종 8(1178) 53세의 나이로 입적하였다. 왕이 크게 슬퍼하여 국사(國師)로 삼고 시호를 현오(玄悟)’라 한 뒤 동림산 기슭에서 화장하였다. 그 외에도 글을 지은 이와 건립연대 등이 기록되어 있다. 전체적인 조형이 간략한 고려 후기 석비의 새로운 양식을 보여준다.(출처 : 문화재청)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12,00090000,31&fla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