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인천/유형문화재,기념물

용인 유형원선생 묘(경기도 기념물32호)

천지연미소바위 2015. 6. 22. 17:05

 

 

 

 

 유형원선생묘는 경기도 기념물32호인데 현장 안내판에는 경기도 기념물31호로 되어 있네요. 문화재청에 민원했네요.

 

답변 :

[주관부서] : 행정문화국 문화관광과 
[작성자] : 이X수 [전화번호] : 031-324-30XX 
[답변내용] : 1. 시정발전을 위한 관심에 감사드리며, 귀하의 가정에 평화가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2. 문화재 안내판 확인결과 안내판 문구에 오류가 있음을 확인하였으며, 하반기 문화재 안내판 보수공사 시행시 반영예정입니다. 기타 궁금하신 사항이 있으시면 용인시청 문화관광과로 문의하여 주시면 성심껏 답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조비산이 보인다. 석천리 황새울 방향으로 좌회전 한다.

 

 

멀리 우회전하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다음지도에서 1번 위치이다.

 

 

 

 

좌회전하라는 안내판이 있다. 다음지도에서 2번 위치이다.

 

 

길은 비좁다.

 

 

  문화재청에 있는 주소인 '백암면 석천리 산28-1'는 광범위하여 '백암면 석천리 614-1'를 내비에 찍고 찾아 가시기를 권해본다. 멀리 보이는 건물의 마당 주소이다. 마당에 주차해도 되겠지만 가정집이고 커다란 멍멍이가 2마리가 있어 외래인을 큰소리로 맞이하여 좀 그렇네요. 다음지도에서 4번위치이다. 본인은 3번 위치에 미리 주차하고 걸어 갔지요.

 

 

건물 왼편에 안내판이 있다.

 

 

 

어설프지만 삼거리인데 우측으로 간다. 왼쪽은 밭으로 가는 길이다.

 

 

왼쪽으로 올라 간다.

 

 

계단을 올라 가면 유형원 묘소가 있다.

 

 

 

 

 

 

 

 

 

 

 

 

 

 

유형원선생묘 뒤에 비슷한 모양의 묘가 있다.

 

 

유형원이 1살때 자결한 아버지 유흠의 묘이다.

 

 

 

 

 

 흠(欽)자 밑에 마음심()이 있다. 사전를 찾아 보아도 없다.

 

 조선시대 실학자로 근대사회에 새로운 학풍을 일으키는데 큰 역할을 한 반계(磻溪) 유형원(16221673) 선생의 묘소이다. 광해군 14(1622)에 서울에서 태어난 선생은 5세부터 공부를 시작하여 7세에는 서경을 읽고 20세에는 문장이 뛰어나 주위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선생은 단 한번 진사 시험에 합격하였을 뿐 관직에는 관심이 없었다. 효종 4(1653)32살의 젊은 나이로 전라북도 부안에 내려가 농촌에서 생활하면서 학문 연구와 저술에 몰두하였다. 그의 저서반계수록에 의하면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농민들의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토지제도를 개혁하여 자영농민을 육성해야 한다고 했다. 이 밖에 정치·경제·문화 전반에 걸친 개혁안을 체계적으로 제시하였다. 선생은 실학을 학문의 위치로 자리잡게 하였으며 평생을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며 실학의 선구자로 많은 업적을 남겼다. 묘역 안에는 혼이 머물고 간다는 직사각형의 혼유석(魂遊石)이 마련되어 있고 그 좌우에는 문인석 1쌍이 배치되어있다. 묘 주위로는 반원형으로 담이 둘러져 있다.(출처 : 문화재청)

 

문화재청 : http://www.cha.go.kr/korea/heritage/search/Culresult_Db_View.jsp?mc=NS_04_03_01&VdkVgwKey=23,00320000,31&fla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