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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부원군신도비(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89호)

다시가 본 연평부원군 이귀 신도비 (공주 연평부원군 신도비(충청남도 유형문화재89호) (tistory.com)) 신도비란 임금이나 고관의 평생업적을 기록하여 그의 무덤 남동쪽에 세워놓은 비를 말한다. 이 비는 조선 중기의 문신인 이귀(1557∼1633) 선생을 기리고 있다. 이귀는 이이·성혼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군인을 모집하여 나라를 구하는데 힘썼다.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를 왕위에 오르게 하는 인조반정때 공을 세워 일등공신이 되었으며, 그후 연평부원군에 봉해졌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에 한돌로 이루어진 비몸과 머릿돌을 세웠다. 거북받침돌은 머리를 수평으로 내밀고 있으며, 머릿돌에는 두 마리의 용과 구름을 사실적이고 생동감 있게 나타내었다. 비문은 조익이 글을 짓고, 오준이 글씨를 썼으며..

숭선군묘(충청남도 기념물 제6호)

다시 찾아가본 숭선군 묘.(공주 숭선군 묘(충청남도 기념물6호) (tistory.com)) 공주 오룡리귀부에서 바라 본 숭선군 묘(사진 중앙 위에 있다) 주차 시설도 생겼다. 묘는 하우스와 건물 사이로 올라간다. 진입로도 새 단장되었다. 조선 16대 임금인 인조의 다섯째 아들 숭선군의 묘소이다. 군의 이름은 징(徵)이며, 시호는 효경(孝敬)이다. 인조 2년(1624) 이괄(李适)의 난으로 인조를 따라 공주(公州)로 잠시 피신한 일이 있었는데, 궁으로 돌아와서도 항상 공주를 그리워하더니 숙종 16년(1690) 세상을 떠날 때 공주에 묻어 줄 것을 유언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왕족의 무덤은 도성(都城)에서 90리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법 때문에 중단되었고 그 후 후손에 의해 다시 이곳으로 옮겨져 만들어..

공주오룡리귀부(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61호)

다시 찾아가본 공주 오룡리 귀부(공주 오룡리귀부(충청남도 유형문화재61호) (tistory.com)) 사진 중앙 위에 숭선군 묘가 보인다. 귀부는 비받침부분을 일컫는 말로, 대개 거북 모양을 띠고 있다. 이 귀부는 조선 제 16대 임금인 인조의 아들 숭선군의 신도비(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록하여 그의 무덤 가까이에 세우는 비)를 세우기 위해 만든 것이나 비를 세우지 못하고 중단되어 귀부만 남은 것이다. 숭선군은 이름은 징(徵)이고, 인조의 다섯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귀인 조씨(趙氏)이다. 효종 2년(1651) 누이인 효명옹주의 시할아버지 김자점의 역모에 관계되었다 하여 강화도에 유배되었다가, 효종 7년(1656)에 석방되어 벼슬과 지위를 되돌려 받았다. 귀부는 네모난 바닥돌과 큼직한 한돌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