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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 한천정사(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28호)

우암 송시열(1607∼1689) 이 학문을 연구하며 지내던 집이다. 후에 우암의 제사를 모시는 한천서원을 세웠었는데, 고종 5년(1868)에 서원을 철거하였고 후에 후학들이 다시 지은 것이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중앙에 대청마루가 있고 양쪽 끝에 온돌방을 두었다. 주변에 담장을 두르고 앞면에 문을 두었는데 앞면 양측에 은행나무가 있다.(출처 : 문화재청) 지금은 은행나무가 없어요.

옥천 송시열 유허비(충청북도 기념물 제45호)

옥천 이원면 구룡리 마을회관 근처에 주차한다. 유허비 비각 지붕이 보인다. 유허비란 한 인물의 행적을 기리고, 그의 옛 자취를 밝혀 후세에 알리고자 세우는 비로, 이 비는 조선 중기의 문신인 송시열 선생을 기리고 있다. 우암 송시열(1607∼1689) 선생은 옥천 지방에서 출생한 조선의 대유학자이다. 그의 유학사상은 이율곡의 학통을 계승하여 기호학파의 주류를 이루었으며, 조선 인조 대 부터 숙종 대에 이르는 4대에 걸친 노론의 대표로서 정계에서 크게 활약하였고, 뛰어난 학식으로 많은 학자를 길러내기도 하였다. 비는 현재 비각 안에 보존되어 있으며 네모반듯한 받침돌 위로 직사각형 비몸을 올리고 지붕 모양의 머릿돌을 갖춘 모습이다. 비몸 앞면에는 ‘우암송선생유허’라는 비명칭을 해서체로 새겨 놓았고, 뒷면에는..

함평 수벽사& 임천정사

임천정사 : 파평 윤씨의 제실. 입향조 윤길이 지었다. 한때 인재양성 공간으로 쓰였다 수벽사 : 느티나무 숲 물레방아 옆에 자리 잡은 수벽사는 고려시대 여진족을 몰아내고 동북9성을 쌓은 윤관(?∼1111년)장군을 모신 사당 고려국 한림학사 둔옹 퍄평 윤선생 신도비 퍄평윤씨 대언공 장방손 한림공파 유래비 앞에는 해보면 상곡리 635번지에 모평 마을 숲이 있다. 신천강씨 열녀비 : 정유재란 때 왜군들에 의해 두 팔이 잘리면서까지 남편 윤해의 죽음을 막으려했던 강씨부인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정려각. 충노비 : 윤해와 신천강씨 부인이 죽임을 당하자 이 소식을 들은 장남 17살 청립은 노비였던 도생과 사월에게 4살짜리 동생(정립)을 부탁하고 전쟁터로 달려 나갔으나, 청립도 일본군에게 죽임을 당했다. 도생과 사월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