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부산-대구/국보,보물 105

경주 여주이씨 옥산문중 유묵–해동명적(보물 제526호)

경주 독락당(보물 제413호, http://blog.daum.net/dbsqkqh/5758) 참조 아래 사진 출처 : 문화재청 여주이씨 옥산문중 유묵–해동명적(보물 제526호) 『여주이씨 옥산문중 유묵 - 해동명적(驪州李氏 玉山門中 遺墨 - 海東名蹟)』은 조선 중종 때의 문신인 신공제(1469∼1536) 선생이 우리나라 역대 명필의 글씨가 돌에 새겨 있는 것을 탁본하여 상하 2책으로 묶은 것이다. 상권에는 조선시대 문종과 성종의 어필을 앞에 따로 놓고 다음에 신라시대 최치원, 김생, 영업의 3인과 고려시대 탄연, 이암, 신덕린 등의 3인을 합한 6인의 글씨를 모아 놓았다. 하권에는 이강, 승려 혜근, 성석린, 박초, 권근, 이첨, 정도전, 정총, 민자복, 신색 등 12인의 글씨가 실려 있다. 이 책은 탁..

경주 정혜사지 십삼층석탑(국보 제40호)

경주 옥산서원에 예정없이 갔다가 들른 곳이다. 탑이 특이하고 예쁘네요. 옥산서원에 가시거든 꼭 찾아 보아요. 경주 정혜사터에 세워져 있는 탑으로, 흙으로 쌓은 1단의 기단(基壇) 위에 1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인데, 통일신라시대에서는 그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이다. 1층 탑몸돌이 거대한데 비해 2층부터는 몸돌과 지붕돌 모두가 급격히 작아져서 2층 이상은 마치 1층탑 위에 덧붙여진 머리장식처럼 보인다. 큰 규모로 만들어진 1층 몸돌은 네 모서리에 사각형의 돌기둥을 세웠으며, 그 안에 다시 보조기둥을 붙여 세워 문을 만들어 놓았다. 이렇듯 문을 마련해 놓은 것은 열린 공간을 추구하고자 한 의지의 표현으로 보여진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을 조각이 아닌 별개의 다른 돌로 만들어 놓았고,..

경주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국보 제112호)

탑은 국보112호이고, 감은사지 전체는 사적 제31호(blog.daum.net/dbsqkqh/5762)이다. 감은사터 넓은 앞뜰에 나란히 서 있는 쌍탑이다. 2단의 기단(基壇)위에 3층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서로 같은 규모와 양식을 하고 있으며, 옛신라의 1탑 중심에서 삼국통일 직후 쌍탑가람으로 가는 최초의 배치를 보이고 있다. 감은사는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이 새 나라의 위엄을 세우고, 당시 틈만 나면 동해로 쳐들어 오던 왜구를 부처의 힘으로 막아내어 나라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세운 절로, 동해 바닷가인 이 곳에 터를 잡았다. 문무왕은 생전에 절이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그 아들인 신문왕이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즉위 이듬해인 682년에 완공하였다. 이러한 호국사상은 탑에도 이어져 장중하고 ..

경주 독락당(보물 제413호)

경주 독락당은 옥산서원 북측으로 약600여m, 10분 거리에 있다. 이이황 옥산정사 이산해 독락당 편액황 옥산정사 이산해 독락당 편액자동차로 옥산서원 입구에서 왼쪽으로 올라가면 된다. 10월에 포항에서 생질 아들 결혼이 있어 대전에 사는 형님부부와 같이 갔다가 형님이 갑자기 옥산서원에 가보자하여 갔다. 사전 지식 없이 갔기 때문에 옥산서원에서 관광객의 추천으로 옥산서원 세심대쪽으로 우리 부부만 독락당에 걸어서 갔다. 독락당은 회재 이언적 선생의 제사를 받드는 옥산서원 뒤편에 있는 사랑채이다. 이언적(1491∼1553) 선생이 벼슬을 그만 두고 고향에 돌아온 뒤에 거처한 유서 깊은 건물이라고 한다. 조선 중종 11년(1516)에 지은 이 건물은 낮은 기단 위에 세운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