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영사재(경상남도 문화재자료323호) 영사재는 파평윤씨의 화양동 입향조인 사제공 윤장 선생을 기리기 위해 문중과 유림에서 성금을 모금하여 지은 재실로 1907년 중수된 건물이다. 윤장 선생은 조선조 문과에 급제하여 사제판사(司帝判事) 벼슬을 지내던 중 단종 원년(1453)의 계유정난을 피하여 낙향하여 화양동에 은거하면.. *경상-부산-대구/문화재자료,등록문화재 2012.04.07
합천 현산정(경상남도 문화재자료156호) 현초 김시용을 기리기 위하여 1926년에 세운 정자이다. 원래는 현 위치에서 4㎞ 떨어진 노파리에 있었으나, 합천댐 건설로 물에 잠기게 되자 1988년 이곳으로 옮겨 세웠다. 현산정은 ㄱ자형 2층 누각으로, 앞면 5칸·옆면 4칸 규모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 *경상-부산-대구/문화재자료,등록문화재 2012.04.06
합천 옥계서원(경상남도 문화재자료60호) 율곡 이이의 유물인 『격몽요결 』과 『해동연원록 』등을 소장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이이(1536∼1584)는 조선 중기 학자이며 정치가로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루는 대학자이다. 옥계서원은 영조 3년(1725)에 지금 있는 자리에서 4㎞ 정도 떨어진 향옥동에 세웠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 *경상-부산-대구/문화재자료,등록문화재 2012.04.06
합천 사의정(경상남도 문화재자료103호) 손님이 묵고 가기 위한 숙소로 1922년 은진 송씨 문중에서 지었다. 원래는 현재 위치에서 남서쪽으로 1㎞ 정도 떨어진 유전리에 세웠으나, 1985년 합천댐 건설로 지금 있는 자리에 옮겨 지었다. 건물은 앞면 4칸·옆면 3칸 규모의 2층 기와집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 *경상-부산-대구/문화재자료,등록문화재 2012.04.06
합천 송씨종가(경상남도 문화재자료105호) 은진 송씨 문중의 송종만이 조선 고종 3년(1866)에 지은 가옥이다. 처음에는 유전리에 있던 것을 1986년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지었다. 본채는 앞면 5칸·옆면 2칸의 규모이며, 건넌방·마루·큰방·부엌 순으로 배치하였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사.. *경상-부산-대구/문화재자료,등록문화재 2012.04.06
합천 화수당(경상남도 문화재자료104호) 청주 곽씨 문중에서 후세를 교육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1500년대에 지은 건물로 원래 삼락재라고 불렀는데, 뒷날 익성 허유가 화수당이라 이름지었다고 전한다. 1854년 지금의 위치에서 동쪽으로 1㎞정도 떨어진 유전리에 다시 지었는데 합천댐 건설로 1986년 10월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 *경상-부산-대구/문화재자료,등록문화재 2012.04.04
합천 농산정(경상남도 문화재자료172호) 신라말의 학자이며 문장가인 최치원(857∼?)이 지은 정자로, 은거 생활을 하던 당시에 글을 읽거나 바둑을 두며 휴식처로 삼았던 곳이다. 최치원은 신라의 유교학자들 중에서 대표적인 인물이다. 당나라로 유학가서 과거에 급제한 후, 중국에서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토황소격문」이라.. *경상-부산-대구/문화재자료,등록문화재 2012.04.02
합천 가남정(경상남도 문화재자료80호) 조선 명종(재위 1545∼1567) 때 생존했던 문암 정인기·금월헌 정인함·우천 정인철·낙제 정인지 4형제를 위하여 문중에서 지은 정자이다. 건물은 앞면 4칸·옆면 2칸의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정자 앞에는 금월간신도비가 있다.(출처 : 문화재.. *경상-부산-대구/문화재자료,등록문화재 2012.03.17
합천 영의정하연부부영정(경상남도 문화재자료278호) 하연(1376∼1453) 선생과 그 부인 성산 이씨의 영정이다. 조선 세종 때 문신으로 대제학을 거쳐 영의정을 지낸 인물이다. 선생의 아들 하우명이 선생의 묘소 옆 영당에 영정을 모셔 놓고 아침 저녁으로 인사를 드렸다고 전한다. 그 후 선조 41년(1608)에 신천서원 안 사당으로 옮겼다가 대원군.. *경상-부산-대구/문화재자료,등록문화재 2012.03.17
영주 순흥척화비(경상북도 문화재자료242호) 척화비란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승리로 이끈 흥선대원군이 서양사람들을 배척하고 그들의 침략을 국민에게 경고하기 위해 서울 및 전국의 중요 도로변에 세우도록 한 비로, 이 비도 그 중의 하나이다. 비는 널찍한 사각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운 모습으로, 원래는 순흥초등학교 내에 있.. *경상-부산-대구/문화재자료,등록문화재 2012.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