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광주/유형문화재,기념물 154

함평보광사범종(전라남도 유형문화재172호)

계단으로 올라간다 범종은 왼쪽에 있다. 조용하며 인기척이 없다. 일주문 근처에 아름다운 꽃이... 범종은 법당 왼쪽의 범종각에 보관되어 있는 종이다. 원래는 무안 원갑사의 종이었으나 폐사되자, 함평의 용천사를 거쳐 한국 전쟁의 혼란을 피해 1967년 현 위치에 옮겨진 것이라 한다. 형태를 보면, 종을 매다는 고리인 용뉴는 2마리의 용이 서로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고, 용의 다리와 종을 연결하여 무게를 지탱하고 있다. 몸통 윗부분은 2줄의 띠를 두르고 그 안에 8자의 범자를 새겼다. 그 아래에는 사각형의 유곽이 있고, 안에 돌출된 9개의 유두가 배치되어 있다.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보살입상을 양각하였다. 몸통 아래쪽에는 넓은 두 줄의 도드라진 선을 두르고 그 사이에 글이 있어, 이 종이 영조 43년(176..

함평마산리고분군(전라남도 기념물122호)

고분군 입구에 주차장이. 발굴중이라는 안내판이 있다. 혹시 이곳도 고분. 발굴중으로 이곳에 주차를. 표산마을 뒤 낮은 구릉에 있는 무덤들이다. 4∼5세기경의 독무덤(옹관묘)과 5∼6세기경의 돌방무덤(석실묘)이 있는데 일제시대에 도굴된 것으로 보이나 아직 정확한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주위에 흩어져 있는 독무덤의 항아리 파편들은 모두 영산강유역 특유의 U자형 전용 항아리관 파편들이다. 돌방무덤군(석실고분군)은 ‘왕무덤’, ‘8장수무덤’이라고도 부르는데 봉토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 9기이다. 특히 대형무덤인 1, 2호 무덤은 봉분의 정상이 서로 이어져 표주박형태를 하고있다. 현재 무덤은 입구가 매몰된 상태이고, 정상부의 함몰된 남쪽부분에서는 판석이 노출되어 있어 돌방무덤이 분명하나 그 규모나 구..

곤재우득록목판(전라남도 유형문화재146호)

자산서원쪽으로 우회전한다. 자산서원 안내판 곤재 정개청 시비 외삼문(대도문) 윤암정사 유물관 내삼문(겸허문) 윤암사(사당) 조선 중기의 학자인 곤재 정개청(1529∼1590)의 문집을 널리 간행하기 위해 숙종 15년(1689)에 왕의 특명으로 시작되어 숙종 18년(1692)에 완성된 목판이다. 정개청은 어린 시절 보성의 영주산사에서 성리학을 비롯하여 천문, 지리, 의약 등의 학문을 열심히 익혔다. 그후 서경덕을 스승으로 박순과 교류하며 학문의 깊이를 더하였으며, 명종 20년(1565)에 함평군 엄다면 제동 마을로 귀향하여 향리에서 학생들을 양성하였다. 그후 선조 22년(1589) 정여립의 모반사건에 연루되어 20여년간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하였다. 그의 저서로는『우득록』3권과『수수기』9권 뿐이나 현재는『우..

무안 백련사 정관당 부도(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02호)

백련사 정관당 부도는 대학 동기부부 모임에 덕유산에 갔다가 잠시 들른 백련사 경내에 있다. 백련사 천왕문 앞에 자리한 정관당 일선선사(1533∼1609)의 사리탑이다. 일선선사는 조선 중기의 승려로 서산대사의 제자이며 전북지역내의 불교 보급에 큰 영향을 미쳤다. 탑은 연꽃을 두른 원..

무안 매월당 부도(전라북도 유형문화재43호)

전라북도 무안에 있는 백련사 일주문 옆에 있는 매월당 부도. 다음지도에는 엉뚱한 곳에 표시되어 있네요. 문화재청에 주소가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 107번지'로 되어 있으니 잘 못되었나 봅니다. 백련사 일주문 바로 옆에 있어요. 종모양의 이 부도는 매월당 설흔 스님의 사리를 모신 것으로 조선 정조 8년에 조카인 임선행이 세웠다. 설흔 스님은 정조 8년 백련사에서 생을 마칠 때까지 이 지역 불교발전을 위해 노력한 부능로 안국사 극락전 내 불상 뒤에 그림도 스님의 감독하에 조성되었다. 부도는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여 그 유골이나 사리를 모시는 곳으로, 이 부도는 백련사 일주문 옆 부도밭에 자리하고 있다. 둥근 바닥돌 위에 종모양의 탑신(塔身)을 올려 놓은 간단한 형태를 하고 있다. 바닥돌과 탑신의 맨 윗부분은 ..

무안 백련사지(전라북도 기념물62호)

대학 동기 부부모임으로 덕유산에 갔다가 가본 백련사 일주문 직전에 있는 백련사지. 문화재청에 백련사지 이미지 사진은 현재 백련사 전경이네요. 저 멀리 백련사 일주문이 보인다. 백련사는 명승지 구천동을 대표하는 절로 신라 신문왕 때 백련선사가 숨어 살던 곳이다. 전해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여기서 백련이 솟아 나와서 절을 지었다고 한다. 이 절터에서는 광무 4년(1900)에 이하섭이 고쳐 지으면서 기념비를 세운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한국전쟁 때 건물들은 불에 타 없어졌으나, 경종 3년(1723)에 만들어진 것으로 전하는 백련사의 종은 자리를 옮겨 두어 남아 있다. 지금의 건물은 1962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 대웅전은 앞면 5칸·옆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과 비슷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