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족자카르타

인도네시아의 힌두사원 중에서 가장 크고 가장 아름다운 프람바난

천지연미소바위 2018. 12. 24. 21:02

프람바난은 보로부두르와는 달리 그 이름에 특별한 뜻이 담겨 있지 않고 족자 시내에서 동쪽으로 17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프람바난 마을의 이름을 따 지어졌다. 정교한 조각과 세련된 균형미를 자랑하는 힌두사원으로 자바 건축의 백미로 꼽히는 프람바난은 보로부두르 사원과 더불어 1991년 유네스코 지정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 되었다. 프람바난의 건립 시기는 보로부두르와 비슷한 850년경 무렵으로 추정되며 당시 이곳을 통치하던 마따람 힌두 왕국에 의해 세워졌다. 당시 마따람 힌두 왕국은 정략결혼을 통해 보로부두르를 건립한 샤일렌드라 불교왕국과 관계를 유지, 후에는 샤일렌드라가 차지하고 있던 중부 자바를 교묘히 지배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후 불교왕조는 종말을 맞고 힌두왕조의 시대가 열린다. 사원은 한 변의 길이가 222m인 정사각형 안에 사방이 110m인 내원(內苑)이 있고 그 중앙에는 47m의 시바 사원이 위치, 양 옆에는 높이 23m의 브라흐마 사원, 비슈누 사원이 서있다. 건립 당시에는 240개 가량의 작은 신전들이 메인 3신전을 둘러싸고 있는 형태였으나 16세기 발생한 화산 폭발과 큰 지진으로 많은 건축물이 무너져 내렸다. 종교적 관점에서 힌두교는 불교와도 많이 닮아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윤회사상이나, 내세관, 해탈의 성취를 목표로 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래서일까 프람바난의 모습은 보로부두르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지만 조각되어 있는 부조의 손 모양이나 모습 등은 상당히 유사하다. 사원의 구조를 살펴보면 더욱 닮은 점을 발진 할 수 있는데 보로부두르가 욕계, 생계, 무색계를 3단의 기단에 걸쳐 표현한 것처럼 프람바난도 신전의 기초 기단, 몸통, 지붕을 각각 현세인 물질계(Bhurloka), 사후세계인 중간계 (Bhurvarloka), 신성한 영역인 신계(Savarloka)3단에 걸쳐 표현하고 있다. 프람바난 사원 전체의 모습을 살펴보면 정방형의 비교적 안정되고 유한 느낌을 주는 보로부두르의 모습과는 달리 하늘을 향해 치솟은 외형을 나타내는데 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화려함을 더해준다. 사원의 복구는 아직 보로부두르에 비해 미흡하다. 복구가 늦는 것은 사원이 차지하는 중요성에 따라 복구의 우선순위가 밀린 이유도 있겠으나 시멘트 작업 등의 인위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고 일일이 석재들을 끼어 맞추는 등의 작업으로 인해 시간이 많이 소요 된다고 한다. 사원 곳곳에서 복구 작업의 손길을 확인할 수 있다. 프람바난 사원은 라라 종그랑 전설이 있다. 옛날에 반둥(Bandung)이라 불리는 한 왕자가 있었는데 그는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왕자는 적국의 아름다운 라라 종그랑 공주에 반해서 그녀와 결혼하기를 원했지만 공주는 그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원수라는 사실 때문에 그와의 결혼을 절대 원치 않았다. 하지만 왕자의 마력을 두려워한 공주는 그의 청혼을 감히 거절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한 가지 꾀를 내었다. 왕자가 하룻밤 만에 마력을 이용하여 천 개의 신전을 쌓는다면 결혼하겠노라는 불가능한 조건을 내건 것이다. 그러나 반등은 공주의 기대와는 달리 마력으로 많은 악마들을 불러들여 순식간에 신전들을 쌓아 올리려고 했다. 새벽녘에 이 모습을 보고 걱정이 된 공주는 마을 사람들에게 아침이 밝기 전에 신호를 보낼테니 신전 하나를 무너뜨리라고 부탁했다. 드디어 아침이 밝아 오자 1,000개의 신전을 모두 세운 악마들은 일을 멈추었고 마을 사람들은 공주의 신호에 따라 신전 하나를 무너뜨렸다. 결국 반둥왕자는 천 개에서 딱 하나 모자란 999개의 사원이 세워져 공주를 포기하게 되었지만 뒤늦게 공주의 농간에 의해 자신의 꿈이 무너진 것을 알게 되었고 이를 참지 못해 라라 종그랑 공주를 돌로 만들어 버린 후 그 석상을 일천 번째 신전으로 삼았다. 족자의 사람들은 1,000개의 신전이 세워 졌던 곳이 바로 쁘람바난 사원이며 사원에 중앙에 있는 시바 신전 북쪽 석실의 두르가 상이 바로 라라 종그랑의 석상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프람바난 사원을 라라 종그랑 사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부분 내용은 현지 가이드의 허락하에 재편집한 것이다.







저절로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인간이 어떻게 저런 작품을 만들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금처럼 중장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모두 복원하는데 몇백년 걸릴지 모른다는데 지진이 원망스럽다.




































모두 복원하면 얼마나 웅장헐까나? 상상이 안되네요.




























































































인근 식당에서 저녁 식사중 몇장을 담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