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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함평성당(국가등록문화재)

1952년 건립 이 건물은 1949년에 공사가 시작되었으나 한국전쟁이 일어나 북한군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1951년에 함평을 방문한 교황 사절단의 지원으로 공사가 다시 시작되어 1952년에 완공되었다. 1층에는 성당의 교육 및 사회적 공간으로, 2층에는 순수한 미사의 공간으로 구성하였다. 미사공간은 내부 공간의 분절이 없는 강당형이며, 정면 중앙에 솟아있는 8각 종탑이 특징적이다.(출처 : 문화재청)

함평마산리고분군(전라남도 기념물122호)

고분군 입구에 주차장이. 발굴중이라는 안내판이 있다. 혹시 이곳도 고분. 발굴중으로 이곳에 주차를. 표산마을 뒤 낮은 구릉에 있는 무덤들이다. 4∼5세기경의 독무덤(옹관묘)과 5∼6세기경의 돌방무덤(석실묘)이 있는데 일제시대에 도굴된 것으로 보이나 아직 정확한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주위에 흩어져 있는 독무덤의 항아리 파편들은 모두 영산강유역 특유의 U자형 전용 항아리관 파편들이다. 돌방무덤군(석실고분군)은 ‘왕무덤’, ‘8장수무덤’이라고도 부르는데 봉토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 9기이다. 특히 대형무덤인 1, 2호 무덤은 봉분의 정상이 서로 이어져 표주박형태를 하고있다. 현재 무덤은 입구가 매몰된 상태이고, 정상부의 함몰된 남쪽부분에서는 판석이 노출되어 있어 돌방무덤이 분명하나 그 규모나 구..

함평 구 학다리역 급수탑(국가등록문화재)

급수탑 주변에 무료 주차장이 있다. 1921년 건립된 이 시설물은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건립된 급수탑이다. 급수 시설로서 34년 동안 철도 운송에 큰 역할을 했으나, 점차 디젤기관차로 대체되면서 1955년에 급수탑의 기능을 잃은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국적으로 보기 드문 석조 원형탑으로 왼쪽과 오른쪽의 모양이 같게 구성되었다. 근대화 과정에서 교통사적 요충지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철도 시설물로서 가치가 높다.(출처 : 문화재청)

곤재우득록목판(전라남도 유형문화재146호)

자산서원쪽으로 우회전한다. 자산서원 안내판 곤재 정개청 시비 외삼문(대도문) 윤암정사 유물관 내삼문(겸허문) 윤암사(사당) 조선 중기의 학자인 곤재 정개청(1529∼1590)의 문집을 널리 간행하기 위해 숙종 15년(1689)에 왕의 특명으로 시작되어 숙종 18년(1692)에 완성된 목판이다. 정개청은 어린 시절 보성의 영주산사에서 성리학을 비롯하여 천문, 지리, 의약 등의 학문을 열심히 익혔다. 그후 서경덕을 스승으로 박순과 교류하며 학문의 깊이를 더하였으며, 명종 20년(1565)에 함평군 엄다면 제동 마을로 귀향하여 향리에서 학생들을 양성하였다. 그후 선조 22년(1589) 정여립의 모반사건에 연루되어 20여년간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하였다. 그의 저서로는『우득록』3권과『수수기』9권 뿐이나 현재는『우..

시골살이의 희망과 고통 2

겹고광나무 향기나는 철쭉 작약 곤드레, 부지깽이, 눈개승마, 명이나물 밭. 반그늘를 좋아해서... 노란 매발톱 말발도리 복수초, 툴립, 수선화가 지고 백합 차례입니다. 덩쿨장미 으아리 왕보리수 나무에 있는 요놈은 뉴규? 위에 밭이다. 호박 심은 곳 고사리 밭 개복숭아 밭 왕보리수 후에 익는 산딸기 꽃괴 유실수 먹는 재미는 좋으나 이런 정리는 힘들다. 완공 후 그런대로 만족감도 있다. 레드베리 살구도 익어가네요. 윗밭의 오디도 많이 익었습니다.

함평 월호리 일본식 가옥과 창고(국가등록문화재)

함평답사를 계획하면서 가장 어렵게 생각한 문화재이다. 그러나 주인 어른이 대문을 장그는 순간 도착하여 관람을 요청하니 흔쾌히 안내해 주었다. 이곳에 주거하지는 않고 마당에 모(벼)를 키우고 있어 물주고 가던 참이란다. 등록문화재 118호 외쪽이 일본식 가옥이고 오른쪽이 창고이다. 벽면 함석은 예전 것이고 지붕은 다시 개량한 것이란다. 출입문을 열어 구경하게 하였다. 깨끗하게 정리되었다. 주인의 허락하에 에 집에 들어가 보았다. 2층에 올라 가는 계단이다. 다다미는 얼마전에 일본에서 공수해 왔단다. 가옥 1927년, 창고 1930년 건립 이 건물들은 일제 강점기 영산강 중천포 나루터 근처에 지은 일본인 지주의 집과 창고이다. 곡물 수송에 아주 편리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창고의 기능이 강조되었으며, 지금도..

함평 고막천 석교(보물1372호)

이 석교는 함평군과 나주시 경계 사이를 흐르는 고막천을 가로지르는 다리이다. 고려 원종 14년(1273) 무안 법천사의 도승 고막대사가 도술로 이 다리를 놓았다는 전설이 있다. 총 길이 20m, 폭 3.5m, 높이 2.5m로서 5개의 교각 위에 우물마루 형식의 상판을 결구한 널다리로서 동쪽으로는 돌로 쌓은 석축도로가 7∼8m 연결되고 다시 물살을 가르기 위해 세운 최근의 콘크리트 다리가 이어지고 있다. 고막천 석교는 널다리이면서도 목조가구의 결구수법인 주두의 가구법을 택한 것이 특징이다. 다리의 상판은 우물마루 형식을 간직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 목조건축과의 관련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서측 가장자리 1경간은 수리 시에 우물마루를 널마루로 깔아 다양한 상판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다리기..

성주사지석등(충청남도 유형문화재33호)

보령 성주사지에는 다음과 같은 문화재가 있다. 보령 성주사지(사적307호) 보령 성주사지 대낭혜화상탑비(국보8호)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보물19호) 보령 성주사지 중앙 삼층석탑(보물20호) 보령 성주사지 서 삼층석탑(보물47호) 보령 성주사지 동 삼층석탑(보물2021호) 성주사지석등(충청남도 유형문화재33호) 성주사지석계단(충청남도 문화재자료140호) 보령성주사지석불입상(충청남도 문화재자료373호) ◦ 통일신라 말기 성주사 창건시기에 세워진 신라양식의 석등으로 알려져 있음. ◦ 지붕돌에 비해 등불을 두는 화사석과 받침기둥이 가늘게 만들어 졌으며, 팔각형 지붕돌의 상륜부가 파손되었으며, 높이는 220cm이고 화강암으로 되었으며, 파괴되었던 것을 수습하여 지금에 이름.(출처 :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