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부산-대구 580

울주 언양지석묘(울산광역시 기념물 제2호)

도로가에 언양지석묘 이정표가 보인다. 언양 지석묘는 규모로 보아 영남지역 일대에서 가장 큰 바둑판식 고인돌이다. 지석묘의 상석은 길이 8.5m, 너비 5.3m의 덮개돌이 사다리꼴 모양으로 비스듬히 놓여 있다. 지석은 6매로 정도이고, 크기는 된 받침돌의 크기는 2.8m〜3.1m 정도로 거대한 편이다. 서부리 주민들은 이 지석묘를 ‘용바우’라고 부르며, 민속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 아직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지하의 돌방 형태나 출토 유물은 알 수 없지만 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덮개돌이 매우 큰 것이 특징이다. 이 지석묘는 청동기시대 언양 지역의 정치·사회·문화 등을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출처 : 문화재청)

울산 언양성당과 사제관(국가등록문화재 제103호)

계단 입구에 성당주차장(언양읍 송대리 436-2)이 있는데 성당에서 사용 안할시 주차 가능하다. 울산지역에 건립된 최초의 천주교 성당. 일제 강점기에 유입된 종교 건축의 수용 및 정착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는 건물이다. 연혁으로는 ㅇ 1927. 5. 14 : 에밀 보드벵 정신부(한국명 丁道平, 1897-1876) 언양성당에 부임 ㅇ 1928. 5. 25 : 성전 및 사제관 신축 기공식ㅇ 1936. 10. 25 : 본당 및 사제관 축성식 ㅇ 1990년까지 8동의 건물, 신·증축ㅇ 언양성당은 부산교구에서 두 번째로 설립된 본당 ㅇ 영남 천주교 신앙의 온상지로 13곳의 성지와 사적지 및 16개소에 공소 설치 ㅇ 근년에 본당 정면의 현관 좌측면에 새시와 유리로 방풍실 및 신발장 증설 ㅇ 수년전 골함석을 철거하고 ..

울주 언양읍성(사적 제153호)

예부터 경주·울산·밀양·양산과의 교통 중심지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던 옛 언양 고을의 읍성이다. 읍성이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 하는 성을 말한다. 처음에는 흙으로 성을 쌓았던 것을 연산군 6년(1500)에 현감 이담룡이 확장하여 돌로 다시 쌓았다. 평지에 네모꼴로 만들어진 보기 드문 평지성으로, 원래는 둘레가 약 1,000m, 높이가 4m나 되었으며 성안에는 4개의 우물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성을 쌓았던 큰 돌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성벽은 조선 전기 읍성 축조의 일반적인 방식이 반영되었다. 큰 돌을 대충 갈아 쌓은 후 빈 공간에 잔돌을 채워 성벽을 튼튼하게 하였다. 언양읍성은 전국의 중요 읍성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던 14∼15세기의 축조..

울산 강동화암주상절리(울산광역시 기념물 제42호)

북구 산하동 952-1 북측~남측에 걸쳐 있다. 아래 사진은 북측에 있다. 주상절리는 분출화산암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주로 현무암질 용암류에서 나타나는 기둥모양의 수직절리로 용암이 화구로부터 흘러나와 급격히 식으면서 발생하는 수축작용의 결과로 형성된다. 주상절리는 수직으로 발달한 절리들에 의해 다각형(삼각형내지 육각형)의 단면을 갖는 기둥모양들이 서로 연결된 형태이다. 강동 화암 주상절리는 신생대 제3기의 화산활동에 의해 형성된 주상절리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주상절리와는 달리 다양한 형태와 방향으로 발달하고 있다. 대부분의 주상절리들이 수직으로 발달하는 반면, 강동 화암 주상절리는 절리면이 지표면에 수평, 수직, 경사진 형태 등 다양한 방향으로 발달되어 있다. 특히 지표면과 평행하거나 비스듬하..

울산 남목마성(울산광역시 기념물 제18호)

남목마성 가는 길은 주전봉수대(http://blog.daum.net/dbsqkqh/5794)가는 길을 참조하면 된다. 주전봉수대에서 서쪽으로 650여m를 뒤돌아오면 있는 삼거리이다. 우회전하면 하산길이고 직진하면 남목마성 가는 길이다. 단 봉을 박아 놓아서 걸어 가야한다. 남목마성까지 600여m이다. 초행길이고 산길이라 멀게 느껴진다. 다음지도에는 삼거리 근처 주전봉수대쪽에도 표시되어 있는데, 삼거리에서 남서쪽에 있는 남목마성이다. 마성(馬城)은 말이 도망가는 것을 막기 위해 목장 둘레를 돌로 막아 쌓은 담장이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쓸 말을 기르기 위해 주로 해안가와 섬 등을 중심으로 200여개의 목장을 설치하였다. 울산지역의 목장은 조선전기에 방어진목장[구목장], 방암산목장, 이길곶목장 등 모두 3..

울산 주전봉수대(울산광역시 기념물 제3호)

주전봉수대를 찾아 가려면 울산시 동구 주전동 746에 있는 봉호사에 찾아가면 된다. 봉호사 바로 뒤에 있다. 봉수는 과거 통신수단이 발달하지 못하였던 시대의 군사통신제도이다. 조망이 양호한 산정에서 밤에는 횃불로, 낮에는 연기로 국경과 해안의 안위를 중앙에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봉수제가 성립된 것은 1149년(고려 의종 3)으로, 1급에서 4급의 봉수 거화수(炬火數)를 규정하고, 봉수군의 생활대책을 마련해 주었다. 조선 세종대에 이르러 그 체제가 정비되었다. 5거 거화수 등 관계 규식 마련, 각 도 연변의 연대(烟臺) 축조, 봉수선로 획정 등을 통해 그 면모를 새롭게 하였다. 각 봉수에는 오장(伍長)과 봉수군(烽燧軍)이 교대로 근무하면서, 평상시에는 한 홰[烽], 적이 나타나면 두 홰, 적이..

울산 동축사삼층석탑(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1호)

동축사삼층석탑은 동축사 대웅전 앞마당에 위치한다. 평소 같으면 울산 동구 동부동 425-2에 있는 동축사입구 노외공영주차장에 주차 하고 걸어 올라가야할것 같다. 본인은 코로나19와 평일이라 자동차로 동축사 근처까지 올라 갔다. 길은 험하고 비좁다. 동축사는 『삼국유사』「황룡사장육(皇龍寺 丈六)」조에 의하면, 573년(진흥왕 34) 처음 건립되었다고 전해지는 절이다. 그 후 934년(경순왕 8년), 고려 정종(靖宗)대, 1457년(세조 3), 1931년, 1975, 2005년에 고쳐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동축사 삼층석탑은 신라의 전형적인 석탑이다. 화강암으로 된 기단은 면석(面石)이 모두 없어져 원래의 정확한 높이를 알 수 없다. 탑신부는 탑신(塔身)과 옥개석(屋蓋石)이 모두 한 개의 돌로 되어 ..

울산 수운최제우유허지(울산광역시 기념물 제12호)

수운 최제우 유허지는 12시 방향으로 간다. 출입 방지봉을 세운 곳으로 간다. 최제우(1824〜1864)는 경주 출신으로 호는 수운(水雲)이며, 외세의 침략과 봉건사회의 모순에 반대한 종교였던 동학(東學)의 교조(敎祖)이다. 가난했던 그는 장사를 하거나, 서당에서 글을 가르치면서 생계를 이었고, 의술(醫術)과 점술(占術)에도 관심이 많았다. 난세에 참된 도를 구하려 했던 수운은 양산, 울산, 경주 지방에서 수련을 멈추지 않았다. 1860년 4월 5일 마침내 결정적인 종교체험을 통해 도를 구하고, 그 이듬해부터 포교를 시작하였다. 1863년에는 경상도와 전라도뿐만 아니라 충청도를 넘어 경기도까지 교세를 떨쳤다. 교인은 3천여 명에 이르렀고, 지방 종교조직인 접소(接所)는 13개소를 확보하였으나, 186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