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이유태 유허지(충청남도 문화재자료390호) 이유태(李惟泰)는 선조ㆍ숙종대의 문인으로 특히 현종때 크게 활약하였다. 경주인으로 사계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었으며 예학에 이름이 높았다. 인조때 세자사전(世子師傳)을 지내고 공조·이조참의, 승지를 지냈으며 효종 즉위 후 송시열(宋時烈), 송준길(宋浚吉) 등과 북벌계획에 .. *충청-대전/문화재자료,등록문화재 2012.03.03
세종 금남 남산영당(구 충청남도 문화재자료72호, 세종특별자치시 문화재자료7호) 남이웅(1575∼1648) 선생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광무 10년(1906) 유림들이 세웠다. 조선 선조, 광해군, 인조 때 정치가였던 선생은 평소 법을 준수하고 사치를 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광해군 5년(1613)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좌랑, 병조좌당 등 여러 벼슬을 하였으며, 병자호란 때는 소현세자가 .. *충청-대전/문화재자료,등록문화재 2012.03.03
공주 충현서원(충청남도 문화재자료60호) 주자를 비롯하여 이존오·이목·성제원을 기리기 위한 서원이다. 주자(1130∼1200)는 중국 송나라 유학자이며 성리학의 대가로, 순수한 사고와 이성만으로 사물을 의미하는 사변철학(思辨哲學)과 실천윤리의 체계를 확립하였다. 서기가 조선 선조 14년(1581)에 세운 충현서원은 인조 2년(1624).. *충청-대전/문화재자료,등록문화재 2012.03.03
공주 공산성 광복루(충청남도 문화재자료50호) 공산성 안에서 군사가 주둔하던 중군영(中軍營)의 문이었으나 광복 이후 8·15해방을 기리는 뜻으로 광복루라 불렀다. 광복루는 원래 공산성의 북문인 공북루 옆에 있던 것을 현 위치로 옮기고 웅심각이라 불렀는데, 1946년에 백범 김구와 성재 이시영이 이곳에 와서 나라를 다시 찾았다는.. *충청-대전/문화재자료,등록문화재 2012.02.17
공주 공산성쌍수정(충청남도 문화재자료49호) 공산성 진남루 서쪽에 있으며, 조선 영조 10년(1734)에 처음 세운 정자이다. 인조가 이괄이 일으킨 반란(1624)을 피하여 공주로 잠시 피난 왔을 때, 이곳에 머물렀던 일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라고 한다. 이후 여러 차례 보수되어 오다 1970년에 전체적으로 해체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 *충청-대전/문화재자료,등록문화재 2012.02.17
청양삼층석탑(충청남도 문화재자료148호) 청양삼존불입상(보물 제97호)과 함께 ‘일명사’라는 옛 절터에 있던 탑으로, 군청 뒤편에 옮겼다가 1961년 지금의 장소로 옮겨 세웠다. 형태는 1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간결하게 짜여 있고, 탑신은 각 층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한 돌로 만들어 쌓아 올.. *충청-대전/문화재자료,등록문화재 2012.01.01
공주 숙종대왕 태실비(충청남도 문화재자료321호) 2 태실은 왕실의 왕과, 그 자손 등의 태를 묻는 곳으로, 이 태실 앞에는 태를 모신 것을 기념하는 태실비를 세워둔다. 이곳은 조선 19대 임금인 숙종(재위 1674∼1720)의 태를 묻었던 곳이나, 고종 2년(1869) 태와 태실은 경기도 양주로 옮겨가고 현재는 2기의 태실비만 남아있다. 2기의 비 중 조금 .. *충청-대전/문화재자료,등록문화재 2011.12.22
공주 숙종대왕 태실비(충청남도 문화재자료321호) 1 숙종대왕 태실비는 찾아가기가 쉽지 않아 두번에 나누어서 자세히 올리고자 한다. 시골 산번지라 광범위하여 애로점이 있다. 천안논산간 고속도로 남공주IC로 빠저나와 40번 국도 타고 부여방향으로1.6km 쯤 가다보면 태봉교차로가 있다. 여기서 우측으로 U턴하여 다시 공주방향으로 700m쯤.. *충청-대전/문화재자료,등록문화재 2011.12.22
예산 김정희묘(충청남도 문화재자료188호)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서화가인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의 묘이다. 일찍이 북학파인 박제가의 제자가 되어 청나라 고증학의 영향을 받아 실사구시에 입각한 학문을 연구했다. 24세 때에는 아버지를 따라 중국 청나라에 가서 금석학과 서체 등을 배웠으며, 순조 16년(1816)에 북한산 진.. *충청-대전/문화재자료,등록문화재 2011.11.08
예산 월성위 김한신묘(충청남도 문화재자료189호) 조선 후기의 문신인 정효공 김한신(1720∼1758)의 묘소이다. 1732년 13세 때 영조의 둘째 딸 화순옹주와 결혼하여 월성위에 봉해졌으며, 오위도총부도총관과 제용감제조를 역임하였다. 글씨를 잘 쓰고, 시문에 능하였던 그는 애책문(哀冊文), 시책문(諡冊文) 등을 많이 썼으며, 도장을 새김에 .. *충청-대전/문화재자료,등록문화재 2011.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