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청자상감‘王’명잔탁(전라남도 유형문화재294호) 강진청자박물관에 소장된 청자상감‘王’명잔탁은 ‘王’명(銘)이 흑상감되어 있는 매우 양질의 청자이다. 강진 고려청자 요지군의 사당리 41호 주변에서 수습되어 학술적 가치와 함께 강진 대구면 지역이 왕실용 청자를 구웠음을 실증적으로 뒷받침하는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원래 잔.. *전라-광주/유형문화재,기념물 2013.02.14
강진 청자상감운학국화문개합(전라남도 유형문화재293호) 강진청자박물관에 소장된 청자상감운학국화문개합은 뚜껑과 대접이 조합을 이루는 그릇으로 현존 예가 많지 않다. 특히, 그릇 내외면에 가득 시문된 상감문양 등은 고려 후기 청자의 대표적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으며, 강진 사당리에서 뚜껑과 같은 조각이 출토되어 학술적 가치가 있.. *전라-광주/유형문화재,기념물 2013.02.14
강진 청자상감연국모란문과형주자(전라남도 유형문화재292호) 강진청자박물관에 소장된 상감연국모란문과형주자는 유태와 문양, 새김 등이 안정적이며 만듬새 또한 뛰어나 기술적으로도 완성도 높은 주자로 그 예가 매우 희소하다. 특히 규격이 크면서 안정되고 물대의 특수한 장식이 돋보이는 수작으로 특별한 조건에서 제작되었던 것으로 판단된.. *전라-광주/유형문화재,기념물 2013.02.14
장흥 용호정원림(전라남도 기념물68호) 용호정은 비가 와 강물이 넘치면 강 건너 부친의 묘에 성묘를 하지 못하고, 바라만 보며 명복을 빌던 아버지 최영택을 위해 최규문이 조선 순조 28년(1828)에 지은 정자로, 최규문의 부친에게는 ‘부친을 바라보는 정자’요, 최규문에게는 ‘부친을 위로하는 정자’라 하였다. 정자는 느티.. *전라-광주/유형문화재,기념물 2013.02.12
장흥 구룡리마애여래좌상(전라남도 유형문화재193호) 전라남도 장흥군 부산면 구룡리 자미 마을 뒤편 높이 20m가량 되는 병풍 바위에 새긴 마애불이다. 지상에서 약 6m 높이에 선으로 새겨 표현하였는데, 바위면이 평평하지 않아 전체 윤곽을 파악하기 힘들다. 민머리의 정수리 부근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높이 솟아 있고, 얼굴에는 콧.. *전라-광주/유형문화재,기념물 2013.02.12
장흥 부춘정원림(전라남도 기념물67호) 부춘정은 임진왜란(1592), 정유재란(1597) 때 혁혁한 공을 세운 문희개 선생이 고향으로 돌아와 선조 31년(1598)에 지은 정자로 원래는 문희개의 호를 따서 ‘청영정’이라 하였으나 후에 부춘정으로 비뀌었다. 건물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2칸의 온돌방과 2칸의 대청을 두고 앞뒤로 .. *전라-광주/유형문화재,기념물 2013.02.12
장흥 신흥사 소장 정방사명 동종(전라남도 유형문화재304호) 장흥 신흥사에 소장된 “海南 井方寺銘 銅鐘”은 조선후기[1751년, 영조 27년, 乾隆十六年 辛未 五月日]에 제작되었지만 고려시대 걸작인 탑산사종(보물 88호, 1233년 추정)과 상당한 친연성이 느껴진다. 신흥사 동종은 고려 종에 비해 구경이 넓고 상대와 유곽사이에 범자문이 있으며 유곽.. *전라-광주/유형문화재,기념물 2013.02.12
장흥향교(전라남도 유형문화재107호)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태조 7년(1398)에 세워진 장흥향교는 임진왜란(1592) 때 불에 탄 것을 인조 8년(1630)에 수리하였다. 그 후에도 여러 차례 고쳤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대성전·명륜당·동재·서재·제기.. *전라-광주/유형문화재,기념물 2013.02.06
장흥 천도교장흥교당(전라남도 기념물218호) 장흥 천도교당은 원래 1906년 4월에 동학의 후예인 교구장 강봉수(姜琫秀) 등이 중심이 되어 천도교인에게 모금운동을 전개하여 지어졌다. 천도교장흥군교구역사〉와 교당 내부에 걸린 〈교구실기(敎區室記〉(1920년)를 통하여 당시 개축에는 전남의사원(全南議事員) 신명희(申明熙), 장흥.. *전라-광주/유형문화재,기념물 2013.02.06
장흥 사인정(전라남도 유형문화재55호) 설암 김필(1426∼1470)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정자이다. 단종(재위 1452∼1455) 때 홍문관 부제학, 이조참판을 지낸 설암은 계유정란(1453) 후 벼슬을 버리고 장흥에 내려와 숨어살다가 정자를 짓고 후학들을 교육시켰다. 선생이 이곳에서 여생을 마치자 후손들은 그를 추모하기 위하여 ‘사인(.. *전라-광주/유형문화재,기념물 2013.02.06